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名畵

명화로 만나는 순교 殉敎 Martyrdom - 성인들의 이야기

by 행복한오즈 2022. 9.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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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 Martyrdom  - 성인들의 이야기

로마 시대로부터 지금까지 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종교적인 이유로 순교를 했습니다. 비단 그리스도교 만의 얘기는 아닙니다. 사실 순교란 일반적으로 '억압과 박해 아래서 자기가 신앙하는 종교를 위하여 목숨을 바치는 일'로 규정되어 있습니다. 억압과 박해와 수난을 당하면서도 자신의 종교적 신념을 잃지 않고, 결국 생명을 잃고 말았던 성인들, 사실 고대부터 지금까지 수 많은 종교인들이 차별과 억압속에서 목숨을 잃어왔죠.

BELLECHOSE Henri(1415-1440), Jean Malouel(1370-1415) The crucifixion and episodes from the life of Saint Denis

1416, tempera and gold on panel, 162 cm (63.7 in) × 211 cm (83 in), Musée du Louvre

억압과 박해는 국가 권력, 정치적 이데올로기, 민족적 갈등 등 갖가지 세력의 이해관계에 의해서 가해졌습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억압과 박해는 다른 세력보다 '종교적 세력'에 의해서 자행되어온 경우가 많습니다. 자신들의 종교적 신념과 다르다는 이유로 이단자가 되어 처형되었죠. 프라하 카렐대학의 얀 후스(1415년 7월 6일 화형), 후스의 친구이자 동료인 프라하의 제롬(Jerome of Prague), 영국의 메리 여왕 치하의 청교도들, 엘리자베스 여왕 치하의 가톨릭 신자들이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로마 제국와 일제 치하에서는 국가 권력이, 중세 시대와 종교 개혁 시대에는 종교 권력이 박해를 가하는 세력이었죠. 프랑스 프로테스탄트들인 위그노는 로마 카톨릭으로부터, 스위스의 재세례파는 개혁파로부터 순교를 당했습니다.

 

화형당하는 후스(예나 약전, 15세기 후반)

프라하의 제롬의 화형 The burning of Jerome of Prague, John Foxe’s Book of Martyrs(1563)

BOUTS, Dieric the Elder,  Martyrdom of St Erasmus

c. 1458, Oil on wood, 34 x 148 cm, Sint-Pieterskerk, Leuven

 

사실 그리스도교는 순교로부터 출발했습니다. 그리스도교의 역사는 순교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순교를 상징합니다. 그리스도교는 그리스도의 피, 곧 그의 죽음 위에 세워졌습니다. 베드로와 바울을 위시한 그리스도의 제자들과 사도들은 대부분 순교로서 그리스도교를 전하고 기독교의 진정성을 증거했죠.

 

이렇게 순교를 한 많은 사람들 중 '성인'의 반열에 오른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순교를 통해 그리스도에 대한 절대적 애정을 표현했죠. 자신의 삶을 포기하고, 종교를 위해 기꺼이 죽음을 선택한 이들은 많은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아왔고, 성인으로 숭배되었습니다.

CARAVAGGIO,  Beheading of Saint John the Baptist

1608, Oil on canvas, 361 x 520 cm, Saint John's Co-Cathedral, La Valletta

Português: Städel - Frankfurt am Main - Germany, Martyrdom of the Apostles Altarpiece (interior left wing)
1435-40, Oil on panel, 120 x 80 cm, Städelsches Kunstinstitut, Frankfurt

 

Saint Blandina ( 프랑스어 : Blandine , c. 162–177 AD )

Venetian merchants with the help of two Greek monks take Mark the Evangelist's body to Venice, by Tintoretto.

The martyrdom of Saint Mark. Très Riches Heures du duc de Berry (Musée Condé, Chantilly), c. 1412 and 1416.

 

마가(Mark)

마가는 알렉산드리아 사람들에 의하여 그들의 우상인 세라피스를 기리는 웅장한 종교 의식을 할 때 순교당하였다. 그는 무자비한 처형 방법으로 몸이 찢기며 그의 생을 마감하였다.

 

The Beheading of Saint Paul by 엔리케 시모네 Enrique Simonet(1866-1927)

1887, oil on canvas, 400 cm x 700 cm, Málaga Cathedral

Simon de Vos(1603-1676), The Beheading of St. Paul

1640, oil on copper, 66 cm (25.9 in)  x  84 cm (33 in), Royal Museum of Fine Arts Antwerp

 

바울(Paul)

처음에는 사울이라 불렀던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기 위하여 숭고한 희생과 말할 수 없는 수고를 치룬 후, 역시 네로의 박해 아래서 순교하였다. 로마 병사들에 의해 바울은 마을 밖 사형 집행장으로 끌려갔으며, 그곳에서 바울은 기도를 마치고 칼에 목이 베여 순교당했다.

 

Master of Jean Rolin II (Rolin Master), 

The martyrdom of St. Simon Zelotes and St. Jude Thaddaeus - they are beaten to death - Book of hours Simon de Varie

유다(Jude)

그는 A.D.72년 에데사(Edessa)에서 십자가형을 받았다.

 

Santa Giustina (Padua) - Chapel of Saint Luke - Martyrdom of Saints Cosmas and Damian by Antonio Balestra

1718, oil on canvas, Abbey of Santa Giustina

누가(Luke)

누가는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의 기록자이며 복음 전파자이다. 그는 바울과 함께 많은 나라에서 선교하였으며, 그리스의 우상 숭배 제사장들에 의하여 올리브 나무에 목이 매달려 순교당한 것으로 추정된다.

 

Barnabas curing the sick by Paolo Veronese

Musée des Beaux-Arts de Rouen.

바나바(Barnabas)

바나바는 사이프러스(Cyprus) 출신이며, 유대인 자손이다. 그는 약 A.D. 73년경에 순교당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와 같이 계속되는 모든 박해와 끔찍한 처형에도 불구하고 교회는 매일 성장하였고, 사도들과 사도직분을 수행했던 형제들의 가르침 안에 깊이 뿌리를 내렸으며, 그 위에 성도들의 피가 풍성한 자양분이 되어 주었다.

무려 7명의 제자들이.. 그 끔찍한 십자가에서 처형을 당한 것은.. 성령의 능력.. 주님의 능력으로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 보여준다.

"내가 죽어 주님의 뜻을 이룰 수 있다면.. 죽으라 !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지매.. 풍성한 열매가 맺히는 것처럼.."

"한 영혼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만큼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주님을 사랑하는가? 그 분을 위해 목숨을 버리라."

독생자의 끔찍한 죽음을 지켜보기만 하셔야했던 하나님께서 독생자에게 갚아주신것만큼.. 그 분을 위해 목숨을 버린 이들에게 엄청난 영광으로 갚아 주실 것을 기대하며..

He must increase, But I must decrease.

(그는 흥하여야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안티오크의 이그나티우스 Ignatius of Antiochie, 체사레 프라 칸 자노 Cesare Fracanzano (1605-1651)

(이그나티오스, 35년경 - 107년경) 나폴리 회화 학교 , Galleria Borghese, Rome

안티옥의 이그나티우스 Ignatius of Antioch

 

유세비우스의 교회사 (Historia Ecclesiastica)에 따르면, 안디옥의 이그나티우스 (AD 35 or 50~ 98과 117년 사이) 주교는 베드로가 안디옥 주교직의 후임자로 지명했고, 예수님이 품에 안으셨던 아이들 중 하나라고 합니다. 사도 요한의 제자 중 하나라는 주장도 있습니다(PG 5:980). 그는 자신을 테오도루스(Theodorus)라 불렀으며, 이는 ‘심장에 그리스도 예수를 가진 자(is qui habet Christum in pectore)’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초대교회 사도적 교부들(Apostolic Fathers)이 대부분 그러했던 것처럼 이그나티우스도 그리스도 예수와 함께 순교의 길을 걸어가신 분입니다. 그리스도 예수를, 복음을, 자신의 생명과 동일하게 여기는 삶을 살았다는 뜻입니다. 콜베르티누스 코덱스(Codex Colbertinus)에 담긴 그의 순교 이야기(Martyrium)는, 그 당시 트라야누스 (Trajanus) 황제의 판결을 따라 ‘십자가에 못박힌 자를 지니고 다니는’ 이그나티우스가 병정들의 손에 이끌려 로마로 이송되고 그곳에서 로마인의 유희(delectionem)를 위해 사자밥이 되었다고 전합니다 (PG 5:982). 놀라운 것은, 그가 이 판결에 대하여 감사의 탄성을 질렀다는 것입니다. 이런 판결을 허락하신 하나님을 향하여 그는 “당신을 향한 완전한 사랑으로(perfecta charitate) 나를 영화롭게 하였다”고 말합니다. 진실로 그는 세상 끝까지 다스리는 왕이 되는 것보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죽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하여 ‘내 하나님의 수난을 본받는 자(imitatorem passionis Dei mei)’가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하신 분입니다.

이그나티우스가 교회의 역사에서 중요한 이유는 그가 사도들 이후에 하나의 ‘보편적 교회(catholica Ecclesia)’라는 말을 처음으로 언급한 분이기 때문입니다 (PG 5:714). 시대와 공간을 초원하여 모든 하나님의 백성을 하나의 교회로 보았던 거시적 안목을 처음으로 보여준 교부라는 말입니다. 이런 생각에 기초하여 그는 분열(divisiones)을 악의 근원(principium malorum)으로 간주하고, 여러 교회에 보낸 편지에서 언제나 분열의 문제를 지적하며 적극 피할 것을 권면하고 있습니다. 주교가 한 지역교회에 한 명만 있어야 한다는 생각도 아마 이런 맥락에서 나온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10대 박해

1세기에 일어난 네로와 도미티아누스의 잔인한 박해는 주로 개인적인 원한과 이기적인 생각에서 일어난 것이고 나머지는 주로 정치적인 자극을 받아 일어난 것이다. 디키우스와 디오클레티아누스의 박해는 제국 전반에 걸쳐 일어났던 것으로서 기독교를 완전히 섬멸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이루어졌지만 그 외 여덟 번의 박해는 특정 도시나 지방에서 일어난 것이다.

 

① 네로(Nero, AD 54~68년)황제의 박해

로마시의 방화 책임을 기독교인들에게 지워 박해함

-순교자: 베드로, 바울

② 도미시얀 황제의 박해(Domitianus 81-96년) 도미티아누스(81-96)황제의 박해

기독교인들이 독립된 국가를 세우려고 한다는 이유로 박해함. 이로 인해 카타콤에서의 비밀 집회가 생겨남

-카타쿰생활이생김

③ 트라야누스(Trajanus 97-117년)황제의 박해

비밀 결사를 하여 정치적 음모를 꾀한다는 것과 로마인들과 기독교인들의 사회생활 부조화를 이유로 박해를 가함. 황제상에 절할 것을 강요함.

-순교자: 이그나티우스 맹수에게 죽음

④ 하드리얀(하드리아누스 Hadrianus 117-138년)황제의 박해

기독교인들을 미워하여 박해함. 기독교를 불법화함

-호교론자가 나옴

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Marcus Aurelius 161-180년)황제의 박해

가정교사의 사상적 영향(스토아 사상)으로 황제가 기독교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박해함. 177년 리용과 비인에서 특히 심한 박해가 있었다.

-순교자: 저스틴 폴리캅순교 저스틴 마터

⑥ 쎌티미우스 세베누스(셉티무스 세르베루스 Septimius Serverus 191-211년)황제의 박해

열심 있는 이교도였던 부인의 영향으로 교회를 핍박함. 특히 전도 금지령을 내려서 복음이 전파되지 못하도록 방해함

-순교자: 이레니우스 오리겐순교, 이레니우스, 오리겐 부친 순교
퍼페투아, 펠리시타스, 레보카투스, 세터니누스, 세쿤두르스

⑦ 막시미누스(Maximinus 235-238년)황제의 박해

기독교를 근본적으로 박멸하기 위해 교회 지도자들을 제거하려고 함. 이 시기에는 사형은 하지 않았고 투옥과 유형으로 박해를 함

-감독 금광에 노예로 보냄

⑧ 데시우스 황제의 박해(Dicius 249-251년)디키우스(249-251)황제의 박해

로마가 옛 신들을 섬겼을 때는 부강했는데 기독교가 들어오자 나라가 쇠해졌다고 믿고 칙령을 내려 조직적이고 전국적으로 기독교인들을 박해했다. 디키우스는 원칙에 따라 작심하고 박해했기 때문에 이 때의 박해가 가장 심했다. 그의 목적은 신자들을 죽여서 순교자를 내는 것보다 악형과 감금과 공갈로 우상을 숭배케 함으로써 기독교 신앙을 무산시키는데 있었다.

-순교자: 오리게네스 키프리아누스 도피

⑨ 발레리아누스(Vareianus 257-259년)황제의 박해

기독교인들로 인해 질병과 흉년이 생겼다고 믿고 257년과 258년에 큰 박해를 했다. 신자의 집회를 엄금하고 교회의 재산을 몰수하고 지도자들을 처형했으며 주요 신자들을 유형 보내고 재산을 몰수했다.

-순교자: 키프리아누스 순교

⑩ 디오크레 티아누스(Dioclecyianus284-305년)황제의 박해

기독교와 같이 다루기 어렵고 강력한 조직체가 제국 내에 있다는 것에 대해 못마땅하게 여겨 기독교를 박해함. 그도 조직적인 박해를 했는데 예배당 파괴, 성경 압수, 성직자 투옥, 악형에 처하고 우상에게 제사를 드리게 하는 등 핍박을 했는데 304년에는 모든 기독교인들에게 제사를 드릴 것을 명령한 제4칙령을 내렸다. 무서운 박해로 디키우스 때처럼 순교자도 많이 나고 배교자들도 많이 났으나 기독교인들을 이해한 민중들이 이전처럼 적대하지는 않았다.

-순교자: 성 카다리우스 옥사

 

로마제국 치하에서의 10차례 박해 동안에 죽은 수많은 그리스도교인들은 죽음으로써 자신의 종교적 신념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믿음을 지키기 위해 순교를 한것이죠. 그리스도교인들은 이교도의 신들에게 제물을 바치기를 거부했기 때문에 박해를 받았으며, 그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처형을 당했습니다. 사람들은 순교자들이 묻힌 곳을 참배했으며, 기념일을 만들어 그들의 죽음을 기념했습니다. 세례자 요한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처형에 앞서 참수되었으며, 사도 중에도 순교자들이 있었죠. 베드로는 전통적인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순교했으며, 안드레아는 X자형 십자가에서 순교했습니다.

 

이런 성인들을 그린 그림에서 순교자들이 종종 순교 당시 고문받은 도구를 들고 나오는 경우를 볼 수 있습니다. 돌에 맞아 순교한 성 스테카투스는 돌을 들고 있고, 산채로 껍질을 벗기는 고문을 받고 죽은 성 바르톨로메오는 칼과 자신의 살가죽을 들고 있으며, 성 카타리나는 자신을 깔아 죽인 바퀴를 들고 있죠. 화살에 맞아 죽은 성 세바스티아누스는 화살에 맞은 모습이며, 석쇠 위에서 타 죽은 성 라우렌티우스는 석쇠와 함께 등장합니다.

 

초대교인들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못박힘'을 순교라 생각했고, 그런 그리스도를 따르는 길, 그리스도의 고난을 계승하는 순교를 영광스럽게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사실 이런 걸 '순교적 영웅주의'라고도 표현하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통과 죽음을 넘어 자신의 신념을 실천한 그들은 존경받아 마땅한것 같습니다. 사실 3세기 초부터는 순교자 자체를 숭배하기 시작했고, 각 지역 공동체마다 '수호성인'을 모셨습니다. 예를 들어 성 마르코는 베네치아의 수호성인이며, 성 게오르기우스는 영국의 수호성인이죠. 성 루가는 화가들의 수호성인입니다. 사람들은 성인들을 정신적인 지도자로 삼아 숭배했고, 기도를 올렸습니다.

 

교회는 건물의 벽면이나 제단화에서 성모마리아 옆에 성인의 상을 그리거나 성인을 제단화의 중심인물로 그리기도 했습니다. 때로는 성인의 행적을 서사적으로 그려 영웅적인 업적을 본보기로 삼기도 합니다. 16세기에 종교 개혁이 일어나면서 로마 교회는 성인을 신처럼 숭배하는 것을 금합니다. 성인은 단지 존경할 우리와 같은 인간 이지 신은 아니라는 것이죠. 하지만 가톨릭 세계에서는 여전히 성인의 상이 널리 퍼져 있습니다.

 

DÜRER, Albrecht,  The Martyrdom of the Ten Thousand

1508, Oil on canvas from panel, 99 x 87 cm, Kunsthistorisches Museum, Vienna

16~17세기 반종교개혁 과정에서 성인의 순교를 그림으로 그리는 공식이 확립되었습니다. 성인들은 주로 그림 바닦에서 고문을 당하고 있으며, 한쪽에는 성인들이 숭배를 거부한 이교도의 우상을 볼 수 있죠. 위로 하늘이 열리고, 천사들이 성인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천사들은 순교를 상징하는 종려나무 가지를 들고 내려와 육체적 고통을 마친 순교자를 천상으로 인도합니다. 그림 속에서 성인들은 고통을 끝내고 그의 죽음은 신앙으로 극복되죠. 그리고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영원한 행복입니다.

ALTDORFER, Albrecht,  The Martyrdom of St Florian

c. 1530, Oil on wood, 76 x 67 cm, Galleria degli Uffizi, Florence

ANGELICO, Fra,  Martyrdom of St Lawrence

1447-49, Fresco, 271 x 236 cm, Cappella Niccolina, Palazzi Pontifici, Vatican

BOSCH, Hieronymus,  Triptych of the Martyrdom of St Liberata

1500-04, Oil on panel, 104 x 119 cm, Palazzo Ducale, Venice

BOSCH, Hieronymus,  Triptych of the Martyrdom of St Liberata (central panel)

1500-04, Oil on panel, 104 x 119 cm, Palazzo Ducale, Venice

BRONZINO, Agnolo,  Martyrdom of St Lawrence

1569, Fresco, San Lorenzo, Florence

COXCIE, Michiel van, The Torture of St George

1580s, Panel, Saint Rombout Cathedral, Mechelen

GRECO, El  성 모리스의 순교 The Martyrdom of St Maurice

1580-82, oil on canvas, 445 cm × 294 cm (175 in × 116 in),  Monasterio de El Escorial, Madrid

 

그림원본: Web Gallery of Art, Wikip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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