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名畵

서양 미술양식 연대표 - 르네상스Renaissance 시대

by 행복한오즈 2019. 12.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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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상스 Renaissance

중세가 끝날 무렵 유럽에서는 르네상스라는 풍요로운 발전의 시기가 찾아왔다.

르네상스 시대에 이탈리아는 사회와 정치에서뿐 아니라 예술과 과학 분야에서도 진보의 주요한 촉매로 기능했다. '르네상스'는 수많은 영역에 적용될 수 있는 말이므로 상당히 폭넓은 의미를 지니고 있다. 따라서 르네상스 회화는 어떤 하나의 공통적이거나 문명히 정의할 수 있는 양식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고딕 회화가 로마네스크와 비잔틴 전통에 뿌리를 두고 중세의 봉건제 사회에 의해 형성되었듯이, 르네상스 예술은 새롭고 급속하게 발전하는 문명에서 탄생했다. 르네상스는 중세에서 현대 세계로 향하는 발판이 되었으며, 현대 서구 사회와 서구적 가치들을 형성하는 토대를 놓았다.

 

이탈리아 르네상스 연대표

마사치오가 활동하기 한 세기 전인 조토의 작품에서도 이탈리아의 르네상스가 시작되었다는 것을 분명하게 볼 수 있지만, 이탈리아 르네상스는 서서히 진행되었다. 과학적, 정확성과 사실주의를 추구하는 움직임은

레오나르도, 라파엘로, 미켈란젤로 등의 탁월한 균형과 조화 속에서 절정에 달했다.

또한 인문주의의 영향으로 세속적인 소재들이 증가했다. 르네상스의 말기에 이르러 마니에리즘(Mannerism)이 지배적인 양식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1300년

1285, 두치오 디 부오닌세냐 Duccio Di Buoninsegna 〈루첼라이의 성모〉

1300, 치마부에 피사에 감

1305, 조토, 스크로베니 예배당(파도바)

1320, 피렌체로 간 조토(산타 크로체)

1338-40, 암브로조 로렌체티 Ambrogio Lorenzetti 「팔라치오 프브리코(시에나) Palazzo Pubblico, Siena의 프레스코, 선한 정부가 도시와 시골에 미친 영향(Effects of Good Government on the City Life)

1341, 시모네 마르티니 (Simone Martini, 1283~1344년경) 아비뇽 작업

1348, 안드레아 오르카냐 Andrea Orcagna (본명은 Andrea di Cione :1308년?~1368년?) 〈최후의 심판〉 (칸포 산토(Campo Santo) 벽화), 〈죽음의 승리 Triumph of Death〉

1375, 파리의 테피스트리(Tapisseries: 색실을 짜넣어 그림을 표현하는 직물 공예) 〈앙제의 계시〉 The Apocalypse Tapestry at Château d'Angers

1389, 클라우스 쉴르테르Claus Sluter가 샹몰 수도원(Chartreuse de Champmol)작업

 
1400년

1411-13  도나텔로 〈聖 마르코 St. Marco, Saint Mark〉

1415  림부르 형제(헤르만, 폴, 얀) 〈베리공작의 풍요로운 시간들〉

1415-17  도나텔로〈聖 지오르지오 Saint George〉

1418  난니 디 방코 Nanni di Banco 〈네명의 聖者〉

1419  젠틸레 다 파브리아노(Gentile da Fabriano)가 피렌체에서 정착

1419  필리포 브루넬레스키(Filippo Brunelleschi) 건축가로서 활약 시작 오스페달레 델리 이노첸티(1419년-1445년경) 고아원: 피렌체 대성당의 돔(1296-1418): 산 로렌초 디 피렌체 성당(1419년-1480년대): 파치 예배당: 산토 스피리토 성당: 산타 마리아 델리 안젤리 성당:피렌체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 성당의 돔(1421~34)

1423-25  도나텔로 〈추코네 Zuccone〉

1423-27  도나텔로 〈헤롯 왕의 항연〉

1425~30  도나텔로 《다윗 David〉

1425~28  마사초 〈聖二位一體〉 프레스코 벽화 : 브란카치 예배당

1425~28  플레말레의 화가 Master of Flémalle 〈메로데의 祭壇畵(Mérode Altarpes, New York)〉

1430~52  로렌죠 기베르티 〈천국의 문〉

1432  우첼로, 산로마노 전투(Battaglia di San Romano), 얀 반 아이크 <헨트 대성당 祭壇畵〉

1433~38  루카 델라 로비아( Luca Della Robbia ) 〈피렌체 성당 성가대석〉

1434  얀 반 아이크〈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화〉

1434  프라 안젤리코 〈성모의 대관식〉, 얀 반 아이크〈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화〉

1435  로히르 반 데르 바이덴 〈십자가에서 내려지는 그리스도〉

​​1436-45  프라 안젤리코 <산마르코 수도원의 프레스코 벽화-수태고지〉

 

마사치오아담과 이브 1427년

레오나르도에 따르면, '마사치오는 그의 완벽 작품들을 통해, 모든 주인들의 주인인 자연으로부터 영감을 취하지 않으려는 이들은 결국 몰락하고 만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1830년 이는 외젠 들라크루아가 마사치오에 대해 이렇게 썼다.

'그는 가난하게 태어나서 짧은 생애중 가장 좋은 시절을 무명으로 보냈지만 회화 사상 가장 위대한 혁명을 혼자힘으로 해냈다.'

마사치오의 세계관은 혁명이었다그는 지상 세계의 공기공간에서 숨쉬고 살아가는 유한한 존재들을 정직하고 부드럽게 그려냈다.

도나텔로의 부조 Feast of Herod (1423-1427)

 

1427년〈헤롯왕의 축제〉 도나텔로, 이탈리아 르네상스, 조각.청동, 시에나 대성당

1427년〈성 삼위일체〉 마사치오, 이탈리아 르네상스, 프레스코화, 667×317cm, 산타 마리아 노벨라 교회

1427년〈세금을 바치는 예수〉 마사치오, 프레스코화, 255×588cm, 산타 마리아 델 카르미네 교회

1430년 〈다비드상〉 도나텔로, 이탈리아 르네상스, 조각.청동, 높이 158.1cm, 팔라초 델 바르젤로 국립박물관

1438-40년 성 코스마스와 성 다미안의 참수〉 프라 안젤리코 

이 그림은 피렌체에 있는 산 마르코 수도원 제단화의 프레델라 (그림 하단부의 띠)의 일부이다.

프라 안젤리코의 작품은 꿈틀거리는 역동성과 함께 섬세한 품격을 자랑한다. 고딕 양식의 요소들도 품고 있지만, 인물들은 실제로 관찰한 풍경을 배경으로 자연광 속에서 선명하게 움직이고 있다.

1440년

 

1440~45년, 도메니코 베네치아노(Domenico Veneziano) 〈산타루치아 제단화-聖母子와 성자들〉

1444, 필립보 립피(Filippo Lippi) 〈성모 대관(Coronation of the Virgin)과 성인들 그리고 기증자들〉, 콘라드 비츠(Konrad Witz) 〈제네바 미술관의 제단화〉

1444-59, 미켈로초 미케로치 (Michelozzo Michelozzi) 〈팔라쪼 메디치 리카르디 궁전〉

1446-51, 알베르티 레온 바티스타(Alberti Leon Battista <루첼라이 저택, Palazzo Rucellai〉

1446-52   반 데르 바이덴 최후의 심판

1447-49   안드레아 델 카스타뇨 〈최후의 만찬 Last Supper

1452-66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 아레초의 산프레스코 교회의 프레스코 연작

1453-55   도나텔로막달라 마리아〉

1453   도나텔로가타멜라타 장군 기마상

1449-52, 안드레아 만테냐 <오베타리 예배당 프레스코 벽화〉(파도바)

1456, 야코포 델라 쿠에르치아 <볼로냐의 산 페트로니오 성당(Basilica di San Petronio) 정문, 안토니오 로셀리노 <조반니 켈리니〉

 

1450년경 그리스도의 부활〉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

피에로 미술의 특징은 선명함과 엄숙미이다.

그의 작품은 로마 고전주의와 피렌체 혁신주의의 영향을 받아 복잡한 수학적 구조와 밝은 색상 그리고 수정같이 맑은 빛을 결합하고 있다.

1455년산 로마노 전투 우첼로, 이탈리아 르네상스, 템페라화.패널에 템페라, 오스트리아 미술관

1459년성 세바스찬 안드레아 만테나, 이탈리아 르네상스, 판화.패널에 템페라, 오스트리아 미술관

1460년

1460, 마네티, 브루넬레스키의 생애

1460, 만테냐는 만토바에서, 고촐리는 피렌체에서 작업

1463년경,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 <그리스도의 부활

1464, 우르비노(Urbino), 총독 궁전 페라레, 스키파노이아 궁전 Palazzo Schifanoia

1465, 피오로 델 폴라이올로 <10인의 발가벗은 남자들의 전투미하엘 파허(Michael Pacher) <볼프강 성당 제단화

1475, 피오로 델 폴라이올로 <헤라클레스와 안타이오스

1476-79, 후고 반 데르 구스 <포르티나리 제단화

1477-80, 시스티나 성당 장식 시작

1478, 보티첼리 <프리마베라, 레오나르도 다 빈치 <브누아의 성모

 

1465년10명의 누드가 등장하는 전투 안토니오 폴라이우올로, 이탈리아 르네상스, 판화, 루브르 박물관

1480년

1480, 조반니 벨리니(Giovanni Bellini), <그리스도의 변모〉

1480, 레오나르도 다 빈치 <카네이션을 든 성모〉

▸1480년 〈비너스의 탄생〉 산드로 보티첼리, 이탈리아 르네상스, 캔퍼스에 템페라, 255×588cm, 우피치 미술관

1482년경 프리마베라〉 산드로 보티첼리

보티첼리는 흔히 정교한 이교도적 우화나 신화에서 따온 장면 등을 그린 세속적인 작품들로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의 작품에는 조화와 선의 아들다움이 두드러지며, 부드럽게 가슴을 적시는 우수가 깃들어 있다. 그의 만년에는 이것이 점차 깊어져 침울한 경향으로 바뀐다. 이는 아마도 당시의 정치적 · 종교적 긴장에 대한 그의 반발이 표현된 것으로 추측된다.

 

1480-85, 조반니 벨리니 <法悅에 잠긴 프란체스코

1481, 레오나르도 다 빈치 <동방박사의 敬拜

1480-90, 숀가우어 <안토니우스의 유혹, 동판화

1482-88, 베로키오 <콜레오니의 騎馬像〉

▸1482년 〈베드로에게 천국의 열쇠를 주는 예수〉 피에트로 페루지노, 르네상스, 프레스코화, 시스티나 성당

▸1485년 〈무아경에 젖은 성프란체스코〉 조반니 벨리니, 르네상스, 패널에 유채.템페라, 미국 뉴욕프릭 컬렉션

▸1487년 〈비트루비안 맨〉 레오나르도 다 빈치, 르네상스, 종이에 펜과 잉크, 34.3×24.5cm, 아카데미아 미술관

1490, 레오나르도 다 빈치 <흰 족제비를 안은 여인〉, <리타의 성모〉

1492, 브라만테가 밀라노에서 작업, 미켈란젤로 십자가 처형

1495, 미켈란젤로 <촛대를 든 천사〉

1497, 미켈란젤로 <바쿠스〉

▸1498년 〈최후의 만찬〉 레오나르도 다 빈치, 르네상스, 템페라화, 879×462cm, 산타 마리아 델레 그라치에 교회

1498, 뒤러 <묵시록의 네 騎士〉 목판화

1499, 미켈란젤로 피에타 조각

 

1500년

 

1500년 〈피에타〉 미켈란젤로, 이탈리아 르네상스, 조각.대리석, 높이 174cm, 성 베드로 성당

1500년 〈죽은 예수〉 안드레아 만테냐, 이탈리아 르네상스, 템페라화.캔퍼스에 템페라, 브레라 미술관

1501년 〈다비드 상〉 미켈란젤로, 이탈리아 르네상스, 조각.대리석, 높이 409cm, 아카데미아 미술관

1503년 〈모나리자〉 레오나르도 다 빈치, 이탈리아 르네상스, 패널에 유채, 53.3×76.8cm, 루브르 박물관

1504년 〈성모 마리아의 결혼〉 라파엘로, 이탈리아 르네상스, 패널에 유채, 브레라 미술관

1505년 〈폭풍〉 조르조네, 베네치아 미술, 패널에 유채, 73×79.4cm, 아카데미아 미술관

1506년 〈초원의 마리아〉 라파엘로, 이탈리아 르네상스, 패널에 유채, 빈 미술사 박물관

 

1508년경 바위 의의 성처녀〉 레오나르도 다 빈치

진정한 르네상스인 레오나르도는 위대한 화가이자 조각가, 건축가, 발명가, 엔지니어였으며, 식물학, 해부학, 지질학 등의 분야의 전문가였다. 그의 특징인 서정적 미술은 자연이 바로 영감의 원천이라는 그의 확신을 보여준다.

 

1510년 〈전원합주곡〉 티치아노, 베네치아 미술, 캔퍼스에 유채, 110×138cm, 루브르 박물관

1511년 〈아테네 학당〉 라파엘로, 이탈리아 르네상스, 프레스코화, 바티칸

1512년 〈시스틴 예배당 천정화〉 미켈란젤로, 이탈리아 르네상스, 프레스코화, 시스티나 성당

 

1508-12년경 나상 미켈란젤로, 시스티나 성당

미켈란젤로는 전성기 르네상스의 또 다른 '거인' 이다.

하지만 레오나르도의 서정성과는 대조적으로 미켈란젤로의 미술은 중후함을 특징으로 한다. 서사적 스케일로 만들어진 그의 작품들은 초인적인 형상들로 가득 차 있고, 신체의 아름다움을 잘 표현하고 있다.

 

1513년 〈갈라테이아〉 라파엘로, 이탈리아 르네상스, 프레스코화, 빌라 파르네시아

 

1515년경 빈도 알토비티〉 라파엘로

라파엘로는 레오나르도에게서 심대한 영향을 받았으며, 고전 미술에도 매력을 느꼈다. 그 결과 그의 회화는 영웅적인 웅장함을 지니고 있고, 그의 초상화에는 우아한 자연스러움이 배어 있다.

 

1516년 〈노예상〉 미켈란젤로, 이탈리아 르네상스, 조각.대리석, 높이 229cm, 루브르 박물관

1516년 〈모세상〉 미켈란젤로, 이탈리아 르네상스, 조각.대리석, 높이 235cm, 성 피에트로 빈콜리 성당

1516년 〈세례 요한〉 레오나르도 다 빈치, 이탈리아 르네상스, 패널에 유채, 69×57cm, 루브르 박물관

1516년 〈젊은 여인의 초상〉 라파엘로, 이탈리아 르네상스, 나무에 유채, 85×60cm, 로마 국립고대미술관

1516년 〈레오 10세의 초상〉 라파엘로, 이탈리아 르네상스, 패널에 유채, 우피치 미술관

1516년 〈바커스의 축제〉 티치아노, 베네치아 미술, 캔퍼스에 유채, 75×193cm, 프라도 미술관

 
1520년

 

1523년 〈바커스와 아리아드네의 만남〉 티치아노, 베네치아미술, 캔퍼스에 유채, 런던 내셔널 갤러리

1526년 〈페사로 제단화〉 티치아노, 베네치아, 캔퍼스에 유채, 산타 마리아 글로리오사 데이 프라리 성당

1520~23, 티치아노 〈바쿠스 와 아리아드네〉

1520, 라파엘로 <그리스도의 변용〉, <라 포르나리나〉

1521, 로소 피오렌티노 ROSSO FIORENTINO 〈십자가에서 내려지는 그리스도〉, 〈미켈란젤로 십자가를 쥔 그리스도〉

1524-34, 미켈란젤로 〈로렌초 데 메디치의 묘〉

1526년, 알프레히트 뒤러 〈네명의 사도들〉

1526-30, 코레지오(Antonio Allegri) 〈성모 승천〉

1529, 알브레히트 알트도르퍼 〈이 수스 싸움〉

1530, 로소가 퐁텐블로에 초청됨.

1530, 코레조 〈다나에〉

1531, 미켈란젤로 메디치 마돈나〉

1534, 파르미자니노 〈긴 목의 마돈나〉

1536, 한스 홀바인 〈헨리 8세〉

 

1514-30년경〈비너스, 사티로스, 큐피드 코레지오

코레지오는 살아 있을 당시보다 오늘날에 와서 더 유명해진 작가이다.

마치 바로크 화가 무리요처럼 코레지오의 그림들도 오늘날의 눈으로 보면 지나치게 달콤하다는 느낌마저 준다. 하지만 그 겉으로 드러난 매력의 이면에는 감각적 진리에 대한 확신이 있다.

 

1536 이사벨라 데스테티치아노, 베네치아 미술, 캔퍼스에 유채, 빈 미술사 박물관

1538 우르비노 비너스티치아노, 베네치아 미술, 캔퍼스에 유채, 119×165cm, 우피치 미술관

 

1540년

 

1541년 〈최후의 심판〉 미켈란젤로, 이탈리아 르네상스, 프레스코화, 1460×1340cm, 시스티나 성당

1540, 첼리니 〈프랑수아 1세의 소금그릇〉

1541, 미켈란젤로, <최후의 심판〉

1542, 레스코가 루브르에서 작업

1545, 첼리니, 〈페르세우스〉 조르조 바사리 〈피렌체의 우피치궁〉, 미켈란젤로 〈사울의 회심〉

1546, 티치아노 〈교황 바울로 3세와 손자들〉 피에르 레스코 〈루브르궁의 사각 중정〉 구죵 《처녀의 샘》 브라만테 〈템피에토, 로마: 聖 베드로 대성당〉 미켈란젤로 〈모세〉 〈두 노예〉

1547, 틴토레토(Tintoretto) 〈The Supper at Emmaus〉, 미켈란젤로 〈플로렌스 피에타〉

 

1545년경 〈성 바울의 개종〉 틴토레토

베니스의 화가 틴토레토는 후기 르네상스의 지도적인 예술가였다. 그는 티치아노 밑에서 잠깐 공부한 다음 색상과 명암의 놀라운 대조, 폭넓은 시야, 극적인 동작 등을 보여주는 독특하고 생동적인 양식을 개발했다. 그의 회화들은 종교적 열정과 정열적인 '표현주의' 를 보여준다. 이 점에서 그는 초기 르네상스와 전성기 르네상스의 고전주의를 지나 마니에리즘의 시기에 접어들었다고 할 수 있다.

 

1550, 바르톨로메오 암마나티(Bartolomeo Ammanati) 〈피렌체의 팔라초 피터 Pitti Palace의 中庭〉

1553년 〈다나에〉 티치아노, 베네치아 미술, 캔퍼스에 유채,프라도 미술관

1556-64 〈론다니니의 피에타〉마지막 作) 미켈란젤로

1561-62, 제르맹 필롱(Germain Pilon) 〈앙리 2세의 묘〉

1562, 베로네세, 〈마세루의 빌라에서〉

1563, 대(大) 피터르 브뤼헐(네덜란드어: Pieter Brueghel 〈바벨탑〉

1566-69, 大 브뤼헐 〈농부의 결혼〉

1566-1610, 안드레아 팔라디오(Andrea Palladio) 〈베네치아의 산조르조 마조레 성당〉 ; 비첸차의 빌라 로톤다

1573, 베로네세 〈세리 레위의 집에서의 만찬〉

1581-83년, 조반니 볼로냐 〈사비니 여인의 약탈〉

1586, 엘 그레코 〈오르가스 백작의 장례식〉

1588, 틴토레토, 〈천국〉

1592-94년, 틴토레토 〈最後의 晩餐〉

1598, 엘 그레코, 〈감람산 위의 그리스도〉

 

1560년

1600, 루벤스와 이니고 존스가 이탈리아에서 작업

1673, 로마의 일제수 교회 : 비뇰라가 설계하고, 정면은 델라 포르타가 만듦

1560년경 〈비너스와 아도니스〉 티치아노

서구 회화의 발전에 심대한 영향을 끼친 티치아노는 가장 위대한 베니스 화가이자, 세계 최고의 예술가 중의 한 사람이다. 혼을 사로잡는 듯한 연약한 아름다움을 지닌 그의 후기 작품들은 놀랍게도 20세기의 회화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1580년

 

1586 오르가스 백작의 매장엘 그레코, 매너리즘, 캔퍼스에 유채, 361×488cm, 산 토메 교회

1594 최후의 만찬틴도레토, 매너리즘, 캔퍼스에 유채, 569×366cm, 성 조르조 마가오레 교회

 

1597-99년경성 마르티나, 성 아그네스와 함께 있는 성모와 아기 예수 엘 그레코
엘 그레코는 마니에리즘 시기의 위대한 종교 화가이다.

그의 정열적인 상상력은 그 이후 마니에리즘 화가들의 양식적인 기교들을 뛰어넘는다. 그는 베네치아와 로마를 여행하고 나서 스페인의 톨레도에 정착했다. 그의 작품은 스페인 반동기의 종교적 갈등을 그대로 반영한 신비로운 열정이 드러나 있다.

The Last Supper (1594)

160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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