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2회] 추억의 한 끼, 그해 겨울은 따뜻했네 / 2021년 12월 23일 19:40 방송
■ 기획 KBS / 프로듀서 정기윤
■ 제작 KP 커뮤니케이션 / 연출 최영일 / 작가 전선애
■ 2021년 12월 23일 목요일 저녁 7시 40분 ~ 8시 30분
인천 교동도에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오래된 시장이 있다. 6,70년대 옛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대룡시장은 전쟁을 피해 내려온 피란민들이 정착하면서 형성된 곳으로 68년째 작은 가게를 지키는 아흔의 할머니와 평생 양복 재단사로 살아온 여든의 할아버지까지, 시장 골목에는 주인과 함께 나이가 든 오래된 가게들이 자리를 잡고 있다. 3대째 정육점을 지키고 있는 최성호씨처럼 가게의 주인은 대부분 2,3세대로 대를 이어가고 있고, 좁은 골목을 사이에 너나없이 가족처럼 살아온 시장사람들의 추억은 밥상에도 고스란히 남아 있다는데..
바닷물을 간수 대신 사용해 두부를 만드는 날이면, 황해도가 고향인 실향민들은 꼭 두부를 만들고 남은 비지로 되비지탕을 끓였고, 순무로 김치를 담글때도 꼭 고수를 넣었단다. 눈감으면 아직도 고향의 풍경들이 필름처럼 지나가고, 두부 촛물로 세수하고 머리감던 시절, 파속에 쌀과 콩을 넣어 불에 구워먹던 어린시절 추억도 아련하게 떠오른다. 구불거리는 골목을 따라 세월이 켜켜이 쌓인 대룡시장의 그리움 가득한 밥상을 만난다 .
김포 덕포진에는 낡은 책상과 의자, 오래된 풍금과 난로 위에 놓인 도시락,
보리밥에 무말랭이무침 전부인 그 시절 도시락이 난로 위에서 따뜻해지고, 설설 끓는 우거지 감자탕에 삼겹살과 ‘쫀드기’가 맛있게 구워지면, 해지는 줄 모르고 뛰어놀던 어린시절이 어제처럼 생생하다. 어느새 함께 늙어가는 50년 스승과 제자들, 서로가 있어 행복했던 고마운 한끼를 만나본다.
광주 도심 한복판, 햇볕이 드는 숲이라는 고운 이름을 가진 양림동은 오래된 한옥과 서양식 고택이 공존하는 독특한 풍경을 가진 곳이다. 한때 ‘서양촌’이라 불렸던 양림동은 1900년대 초 미국 남장로교 선교사들이 정착해서 살았던 곳으로 400년된 호랑가시나무와 함께 선교사들이 향수를 달래기 위해 심은 피칸나무, 은단풍나무들이 마을을 감싸고 있다. 나무의 열매들은 마을 사람들에게 살림 밑천이 되어주기도 했고, 귀한 식재료가 되어주기도 했다. 선교사들이 즐겨 먹던 수프와 구운 빵이나 쿠키는 그야말로 신세계였고, 서양문화가 제일 먼저 도착했던 양림동은 동네 통닭집에서 수프를 내놓았을 만큼 신식마을로 통했단다. 외국인 선교사들에게도 한국 음식은 쉽게 적응하기 힘든 낯선 음식이었지만 ‘친구가 되기 위해 밥을 먹기로 했다’는 편지를 보내기도 했던 선교사들은 밥을 나누어 먹으며 한국인들과 친구가 되고 이웃이 되었다.
특히 허철선이라는 한국 이름으로 살았던 헌틀리 선교사의 사택 암실은 80년 5.18 민주화운동 당시, 힌츠페터의 사진을 인화했던 곳으로 광주의 오월을 기록하여 세상에 알린 목격자가 되어주었다. 어둠을 이기는 빛처럼, 서로 보듬어 안고 함께 아픔을 이겨낸 기억을 단단하게 품은 주먹밥과 섞이고 어우러져 살아온 시간이 담긴 도토리묵비빔밥 한그릇, 광주 100년의 시간을 오롯이 품은 양림동의 밥상을 만나본다.
화물열차가 하루 두 번 오가던 곳. 장사를 하기 위해 모인 이들이 철길에 모여살기 시작하고 마을이 형성되어 경암동 철길마을이 탄생하였다. 기차가 오지 않을 때엔 철길에 고추를 말려두다가도 승무원의 호각소리에 얼른 뛰노는 아이들부터 말려둔 고추를 다 걷어야만 했던 그때. 기차는 사라지고 낡은 철길과 주민들만이 남아 그 시절을 기억하고 있다.
경암동 철길마을 주민들의 삶이 녹아있는 맛있는 한 끼를 맛본다.
원문: https://program.kbs.co.kr/1tv/culture/table/pc/index.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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